역사지식

우암 송시열 업적 및 사약 사건

꼬두암 2016. 10. 15.

조선 후기 우의정을 지낸 우암 송시열은 정치가이자 성리학자이며 철학자였습니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은 충북 이원 구룡촌에서 송갑조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송갑조가 집을 떠나 어느 마을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공자가 그를 

불러 한 제자를 가리키며 "이 사람을 보내니 잘 가르치라"하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공자가 사라지고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꿈이었는데, 집에 돌아오니 부인이 아들을

출산했고 이 아들이 바로 송시열이라고 합니다. 송시열은 세살 때 글자를 깨우치고

7세 때 형들이 읽는 글을 모두 받아 썼다고 합니다. 이러한 능력이 훗날 주자학을

완성한 대학자다운 출발이 되었습니다.

 

송시열은 성현의 학문을 닦는 것을 평생 업으로 삼았으며, 1633년 생원시에 장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효종이 왕자 시절때 그의 스승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암 송시열 업적>

1. 왕에게 13개조항의 글을 올림

효종이 왕위에 오르자 13개 조항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 내용은 '힘써 배워서 마음

을 바르게 한다. 몸을 닦아 집안을 다스린다. 재정을 절약해 나라의 근본을 튼튼히

한다. 검소한 생활로 사치를 물리친다.' 등으로 임금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교훈이

되는 글이였습니다. 

 

2. 북벌론 제창

청나라를 정벌해야 한다고 역설하였습니다. 

 

 

3. 수많은 학자 배출

이단하, 윤증, 민정중, 민유중, 김기하, 이여, 권상하, 정호 등 문인을 배출했습니다. 

 

4. 이기일원론 사상을 발전시킴

율곡 이이의 학설을 받아 '이기일원론' 사상을 발전시켰습니다. 

 

5. 수많은 서적 저술 

주자대전차의, 우암집, 우암선생후집, 우암유고, 주자대전잡억, 송서습유, 정서분류,

송서속습유, 주자여류소분, 논맹문의통고, 심경석의, 삼방촬요, 송자대전 등을 저술

하였습니다. 

 

 

<우암 송시열 사약 사건>

우암 선생은 희빈 장씨(장희빈)가 낳은 아들을 원자로 책봉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숙종에게 상소를 올렸으나, 오히려 관직을 파직당하고 한성에서 추방당했습니다.

그러자 남인들은 서인 세력을 뿌리 뽑으려고 그를 대역죄인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고, 결국 제주도로 귀양가게 되었습니다.

 

남인들은 그를 한성부로 압송해 국문하자고 주장하다가, 굳이 국문할 필요없이

사사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그가 제주도에서 한성으로 올라오던 중인 

1689년 7월 19일 정읍에서 속종이 내린 사약을 주어 사사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83세를 일기로 일생을 마쳤으며, 이 사건이 기사환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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