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지식

노예무역 배경 흑인노예 실상(삶)

꼬두암 2016. 2. 15.

산업화로 인한 노동력 확보의 필요성이 흑인 노예무역 배경이며, 이로 인한  흑인노예 실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했습니다. 유럽인들은 흑인 노예무역이 한창 성행할 때 "흑인 노예는 일을 훌륭하게 해내는 기계

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아프리카 흑인들을 사람도 짐승도 아닌 기계나 상품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인간은 크고 작은 전쟁을 하였을 때 승리자는 패배자 중 쓸 만한 남녀를 끌고 가서 일을 부려먹었으며, 이것

을 전쟁노예라고 하는데, 유럽인들은 노예를 사고 팔았으며, 최하위계층이었던 노예들은 그 시대 노동력의

근본이었고, 이런 '전쟁노예'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으나, 흑인노예가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6세기

중반경입니다.

 

 

<노예무역의 배경>

흑인 노예무역은 16세기 중반부터 19세기까지 약 400면 동안 행해졌는데, 이유는 산업화된 사회에서 노동력

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으며, 흑인 노예무역에 열을 올린 나라는 영국, 에스파냐, 포르투갈을 손꼽을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부강함을 누리던 이 나라들은 새 항로 개척과 함께 많은 영토와 식민지를 거느렸습니다.

 

처음엔 노동력 확보 수단으로 아프리카의 흑인노예를 사냥했는데, 노예무역이 많은 이익을 남기자, 본격적인

노예사냥을 위해 아프리카로 떠났으며, 서로 경쟁하면서 흑인노예를 사냥하게 된 것입니다.

 

 

<노예 사냥 수법>

초기에는 매우 치사한 방법을 사용해 흑인들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아프리카인들이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

을 길에 떨어뜨려 놓고 숨어 있다가 그것을 주워가는 흑인을 도둑으로 몰아 붙잡았으며, 붙잡힌 흑인은 꽁꽁

묶인 채로 끌려가서 노예가 되었습니다.

 

노예무역이 많은 이득을 남기자 노예 사냥 수법은 점차 잔인해졌습니다. 그들은 아예 무장을 하고 흑인 마을

로 침입하여 총부리를 들이대거나 불을 질러 놓고 생포했습니다. 또한 유럽인은 여러 종족으로 나뉘어 있는

흑인들의 사이를 갈라 놓음으로써 서로 싸우게 하였습니다. 이긴 쪽에는 많은 포로가 생겼고, 유럽인들은 그

포로를 헐값에 사들였습니다.

 

온갖 수단과 잔인한 방법을 써서 사들인 흑인노예를 유럽인들은 엄청나게 비싼 값으로 팔아 넘겼습니다.

 

 

<흑인노예 실상(삶)>

흑인노예들은 쇠줄에 몸이 묶이고 손발에 족쇄가 채워져 노에시장에서 팔려 나갔습니다. 사는 사람이 흑인의

주인이 되며, 팔린 흑인은 가족과 영영 이별해야 했습니다. 백인들은 노예의 몸에 시뻘겋게 달군 쇠도장을 찍

어 자신의 것이라고 표시했습니다.

 

흑인노예들은 배에 짐짝처럼 실려 유럽으로 끌려갔습니다. 지옥 같은 배 안에서 실려 가던 노예들은 병으로

많이 죽기도 했는데, 이처럼 노예무역선에서 죽은 노예의 수는 7,0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흑인노예들은 농장이나 광산 또는 주인의 저택 안에서 하루 종일 고된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백인들은 채찍

으로 사정없이 때리고 감시하면서 노예들을 부려 먹었습니다. 노예들은 인간다운 대접을 손톱만큼도 받지 못

하고 노동력을 착취당했습니다.

 

아프라카에서 팔려 간 흑인노예의 수는 16세기~19세기까지 1,500만명에 가깝다고 합니다. 노예무역선에서

죽은 노예들까지 합하면 8,500만명이 넘는 엄청난 숫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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