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지식

알렉산더 대왕 동방원정 요약 설명

꼬두암 2016. 4. 13.

그리스 북쪽 마케도니아의 왕인 알렉산더 대왕(BC 356~BC 323) 동방원정은 지중해와 오리엔트 세계를 하나로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는 혼란에 빠져 있던 그리스를 정복하고 페르시아까지

정벌하려 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뒤를 이어 알렉산드로스라는 젊은 왕자가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알렉산더 대왕입니다. 알렉산드로스는

매우 영리한 왕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해, 태살리아에서 사들인 말이 너무 사나워서 타는 장수가 없었기에,

필리포스왕이 말의 목을 베어 버리라고 명령하자 알렉산드로스 왕자가 나서서 타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왕자는 사나운 말의 목을 쓰다듬다가 날쌔게 올라타고 몰았습니다. 주위에 환성이 터지자 왕이 왕자를 불러서

물어 보았습니다. "어떻게 그 사나운 말을 다루었느냐?" "이 말은 제 그림자를 보고 무서워 날뛰었습니다. 말의

머리를 해를 향하게 해 올라타면 됩니다." 정말 명석한 두뇌를 가졌다고 생각됩니다. 

 

 

<알렉산더 대왕 동방원정 줄거리>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그리스 연합군 3만 5,000명을 이끌고 소아시아로 건너가서 페르시아군을

격파하고 전진했습니다.

 

이 무렵에 소아시아에는 고르디온 매듭이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왔습니다. 고르디온의 신전 기둥에 수레가 매어

져 있었는데, 그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를 지배한다는 예언이 떠돈 것입니다. 많은 장수들이 그 매듭을 풀려고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고르디온에 온 알렉산더 대왕은 그 매듭을 풀려고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칼로 쳐서

매듭을 단번에 잘라 버렸다고 합니다. 

 

알렉산더는 다음 해 이수스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다리우스 3세는 대군을 잃고 도망쳤고 왕비와 공주

가 포로로 붙잡혔습니다. 알렉산더는 그 포로들을 정중히 대우해 주었습니다.

 

 

기원전 332년, 이집트로 건너간 알렉산더는 나일 강 어귀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도시를 건설했는데, 바로 '알렉

산드리아'입니다. 알렉산더는 다음 해 봄에 이르러서야 페르시아를 향해 진격했습니다. 

 

기원전 331년, 알렉산더는 소아시아와 이집트를 평정한 뒤에 패르시아와 결전을 치르기 위해 티그리스 강 북쪽

의 아르벨라 부근에 진을 쳤습니다. 다리우스 3세 또한 비장한 각오로 대군을 이끌고 맞섰습니다. 

 

"야만족 애송이야! 내 아내와 딸을 내놓고 무릎을 끓어 사죄하라. 그러면 목숨을 살려 주겠다." 다리우스 3세가

외쳤습니다. "네 아내와 네 딸은 나를 가리켜 아시아 왕이라 부르는도다. 그러니 너도 항복하고 내 앞에 고개를

숙여라." 라고 알렉산더는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마침내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다리우스 3세는 전차를 타고 병사들을 지휘하고, 알렉산더는 말을 타고 마케도

니아의 병사를 휘몰아 갔습니다. 이 대결전(아르벨라의 싸움)에서 페르시아군은 다시 일어나지 못할 만큼 크게

패했습니다. 

 

다리우스 3세는 간신히 도망쳤지만,  다음 해 신하인 베소스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으며, 이로써 오랜 전통과

강대함을 자랑하던 페르시아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알렉산더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기원전 326년, 인더스 강을 건너서 인도로 진격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병사들

이 심한 더위와 전염병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원정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24년에 바빌론으로 가서 그 곳을 대제국의 수도로 삼았으나, 열병에 걸려 32세의 젊은 나이로 대왕의 최후를 마쳤습니다.

 

<알렉산더 대왕 동방원정 결과>

알렉산더 대왕은 지중해와 오리엔트 세계를 하나로 만들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정복하는 곳마다

로운 도시가 세워졌지만, 정복한 지역의 전통과 관습은 그대로 지켜주었습니다. 그리스인과 페르시아인의

결혼도 활발해서 동과 서의 융합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그리스의 예술과 학문에 페르시아의 문화가 더해져 헬레니즘 문화가 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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