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지식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재건 및 당백전 상식

꼬두암 2016. 2. 11.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 재건을 위해 흥선대원군은 당백전을 발행하였습니다. 흥선대원군의 경복궁재건

목적은 왕권을 강화하고 왕실의 존엄성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이로 인해 조선 정부의 재정은 악화되었고

결국 당백전을 발행하여 화폐 유통 질서에 큰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경복궁 재건>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타 버린 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아들을 왕으로 앉힌 뒤 정권을 움켜진

흥선대원군은 왕권을 강화하고 왕실의 존엄성을 내세우기 위해 대신들의 반대와 열악한 재정 상황에도

불구하고 1865년부터 경복궁 중건에 나섰습니다. 

 

 

흥선대원군은 백성들을 부역에 동원하고 능이나 개인의 사유지에서도 목재를 베어 오며, 백성과 종친들

에게 원납전을 징수하고 당백전을 발행하는 등 강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마침내 고종 5년인 1868년에

경복궁을 중건합니다. 조선말기 건축 공예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경복궁은 이렇게 재탄생하였습니다.

 

"궁궐의 위엄이 왕권을 나타내는 것인데...."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려서 경복궁 자리에 잡초만 무성한 것을

본 흥선대원군은 가슴이 아팠습니다. 1865년(고종 2년) 봄, 드디어 경복궁을 다시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공사를 지휘할 영건 도감이 설치되고, 책임자들이 임명되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이 기부금을 걷는다고 하자 대왕대비 조씨가 10만 냥을 내놓았으며, 그러자 너도 나도 기부금

을 바쳤습니다. 공사도 자진하여 나서는 백성들 덕분에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뜻밖의 화재로 임시 건물

800간과 재목이 몽땅 불타 버렸습니다.

 

 

그러니 공사 진행이 힘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좋은 재목을 구하기도 아렵고 먼 곳에서 운반해 오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흥선대원군은 부족한 공사비를 메우기 위해 세금도 올리고 성문 통행세도 받는가 하면, 그것도 모자라

당백전이라는 돈을 만들어 냈습니다. 당백전으로 인해 물가가 치솟는 바람에 2년 만에 사용을 중단하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경복궁 재건 공사로 인해 흥선대원군은 백성들의 원망을 샀습니다. 양반은 양반대로 조상의 묘에 있는

돌과 나무를 마구 베어 간다고 불평을 하는가 하면, 백성들은 공사 때문에 고되다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또 지나치게 박해를 받는 천주교 신도들에게도 원수가 되었습니다. 

 

또한 흥선대원군은 천주교 박해령을 내려서 6년 동안 무려 8,000명이 넘는 신도들을 학살했는데, 이것

병인박해 또는 병인사옥이라고 합니다. 

 

 

<흥선대원군 당백전>

당백전은 경복궁 재건 사업 등으로 인한 조선 정부의 재정 악화로 1866년 11월부터 약 6개월 동안 발행

화폐로, 엽전 한 닢당 이전의 엽전인 상평통보의 100배 가치를 지녔습니다.

 

당백전의 발행으로 일시적으로는 국가 재정을 매울 수 있었으나 시중에 화폐량이 많아져 화폐 유통 질서

에 큰 혼란을 일으켜 결국 1876년 4월에 당백전을 찍는 것을 중단하였고, 그 다음 해 10월에는 유통을

금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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