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지식

한명회 신숙주 숙주나물 유래

꼬두암 2015. 12. 29.

세조를 임금으로 만든 사람 중에 한명회 신숙주 어떤 인물인지 또 숙주나물 유래 등을 알아보겠습니다.

한명회와 신숙주는 권람과 함께 수양대군(세조)을 왕위에 올리고자 1453년 김종서를 죽이는 계유정난을

성공하면서 나란히 1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린 단종 임금을 몰아내고 숙부인 수양대군이 왕이 되는데 가장 앞장 선 인물로 지탄의

대상이 되곤 하는데, 어떤 인물들인지 아래와 같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수양대군(세조)의 책사 한명회(1415~1487)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책사로서 그에 관한 모든 일을 계획하고 '계유정난'을 주도하여 수양대군을 왕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조선 개국 당시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 '조선'이라는 국호를 받아 온 한상질의 손자로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과거와도 인연이 없어 38세가 되어서 겨우 경덕궁을 지키는 관리인이 되었습니다. 경덕궁은 태조 이성계

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개성의 집입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로 보면 보잘 것없는 벼슬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뇌 회전이 빠르고 일을 꾀함에 능했던 그는 친구 권람을 통해 수양대군을 만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계유정난을 주도하였습니다. 한명회는 계유정난 성공 후 정난 1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세조가 즉위한 후에 좌부승지가 되었다가 이후 도승지, 이조판서, 4도 체찰사, 좌의정을 거쳐 1463년에

는 영의정에 올라 조정을 장악했습니다.

 

 

그도 모자라 자신의 큰딸을 예종비로 만들어 세조와 사돈을 맺었으며, 둘째 딸은 성종비로 만드는 한편,

신숙주, 권람과도 사돈을 맺어 자신의 권력 기반을 더욱 확고하게 한 인물입니다.

 

2. 숙주나물의 유래를 만든 신숙주(1417~1475)

 

신숙주는 세종대왕 시절 집현전 학사로 활동하며 훈민정음의 정리 작업에 참여했을 정도로 뛰어난 학자

였으며, 세종과 문종이 어린 단종을 부탁한 대신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452년 수양대군이 명나라에 사은사로 갈 때 신숙주도 동행하게 되면서 수양대군과 가까이 지냈

으며, 계유정난 성공 후 수양대군이 집권하자 정난 1등 공신이 되어 도승지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수양대군(세조)이 정식으로 왕위에 즉위한 후 예문관 대제학으로 승진했고 주문사로 명나라에

가서 세조 즉위의 인준을 받아 왔습니다. 그 후 병조판서와 좌찬성, 우의정, 좌의정을 거치면서 승승장구

하다 46세에 마침내 영의정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3. 숙주나물의 유래

 

신숙주는 세종과 문종에게 어린 단종을 잘 보살피고 보필하라는 명을 받은 대신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세종과 문종의 명을 어기고 변절하여 어린 단종을 버리고 수양대군을 선택한 인물입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그를 세조(수양대군)의 편에 선 변절자라 했으며, 맛이 쉽게 변하는 녹두나물에

그의 이름을 붙여 '숙주나물'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쉽게 변하고 절개가 없는 신숙주를 맛이 쉽게 변

하는 '녹두나물'에 비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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