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지식

어사 박문수 어떤 인물인가

꼬두암 2015. 12. 19.

야사에서 흥미롭게 전해오는 어사 박문수는 영조를 잘 받든 명신이었습니다. 전설 같은 암행어사

박문수(1691~1756)는 자는 성보, 호는 기은으로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였고, 6세 때부터 아버지

에게서 글을 배웠습니다.

 

박문수는 성격이 강직하였으며 33세 때인 1723년(경종 3)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습니다.

한때 벼슬에서 물러나기도 하였으며, 1727년에 영조가 다시 소론을 등용할 때 조정으로 불려 가

세자 시강원 사서에 올랐습니다.

 

 

이어, 박문수는 삼남 지방(충청, 전라, 경상도)의 암행어사가 되어 백성을 살펴가며 나쁜 벼슬아치

들을 벌주었습니다. 이인좌의 난 때는 진압한 공으로 분무 공신 2등이 되었습니다.

 

경상도 관찰사로 내려갔을 때는 가난한 백성들에게 이자 없이 양식을 빌려 주려고 하였습니다.

한데, 뜻밖에 받으려 하지 않아서 이유를 묻자, "싫다는 곡식을 억지로 빌려 주고 가을에 멋대로

이자를 높여 받아 가곤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박문수는 지방 관리들이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백성들은 박문수의 진심을

알고부터 매우 따르고 우러러 보았습니다.

 

영조와 박문수는 임금과 신하 관계를 떠나 친구처럼 친하게 지냈습니다. 하루는 좌의정과 우의정

어전에서 박문수를 꾸짖었습니다. "공께서는 어찌하여 전하 앞에서도 고개를 쳐들고 서 있소?"

 

"아첨하는 무리일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지요!"

 

 

박문수의 말에 영조도 동의하였습니다. "옳은 말이오. 이후로는 모두 박문수와 같이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도록 하시오. 얼굴을 보아야 거리감이 생기지 않는 법이오."

 

영조는 강직하여 바른 말을 잘 하는 박문수를 신임하였습니다. 박문수가 어영대장이 되었을 때는

나라 안 곳곳에서 외적에 대한 방비책을 마련했습니다. 박문수의 벼슬이 우참찬까지 오르고도

재상이 되지 놋한 것은 강직한 성품 때문이었습니다.

 

박문수는 균역법을 시행하도록 하여 백성의 부담을 줄이려고 노력하기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암행어사란 국왕의 특명을 받고 지방에 파견되어 수령의 업무를 감시하고 백성들의 고충을

살피는 특별 사신을 말합니다.

 

영의정, 우의정, 좌의정으로부터 후보자를 추천받아 직접 임명하며 임명할 때 출도 지방을 적은

서류 봉투와 역마 무료 사용을 허락한다는 표시로 마패를 지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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