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지식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 요약 정리

꼬두암 2015. 12. 10.

페르시아가 아테네를 공격하여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기원전 492년에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공격한 이 전쟁을 페르시아 전쟁이라고 하며, 그리스군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기원전 550년, 지금의 이란 지역에서 페르시아라는 나라가 나타났습니다. 페르시아는 세 번째 통치자인

다리우스 1세 때 전성기를 맞아, 오리엔트 세계를 통일하고 이집트와 마케도니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소아시아(지금의 터키 지역) 역시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에 있었고, 지중해 서해안에 위치한 그리스의

식민 도시들도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어 무거운 세금에 신음해야 했으며, 결국 이들은 그리스 도시

국가인 아테네의 도움을 받아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감히 우리 페르시아 대제국을 건드리다니! 어디 두고 보자!"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는 아테네를 가만

두지 않겠다고 별렀습니다. 기원전 492년, 마침내 다리우스 1세는 군대(약 2만 5천명)를 일으켜 그리스

아테네를 공격했습니다.

 

 

페르시아 대군은 아테네의 북동쪽 마라톤 해안에 상륙하여 치열한 싸움을 벌였지만, 명장 밀티아데스가

지휘하는 아테네군은 불타는 애구심으로 맞서 싸워 승리하였으며, 이것이 바로 마라톤 전투입니다.

 

페르시아는 마라톤 전투에서 패했으나 아직 강했습니다. 원정을 다시 계획하던 다리우스 1세가 갑자기

죽게 되자, 그 아들인 크세르크세스가 기원전 480년에 군대를 일으켰습니다.

 

 

이 때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왕이 이끌고 온 정병 300명이 테르모필레에서 페르

시아 대군과 싸웠습니다. 그 곳은 벼랑이 바다까지 이어져 있는 천연의 요새였습니다. 스파르타군은

마지막 1명까지 용감히 싸웠지만 전멸당했습니다.

 

 

페르시아군은 요새를 돌파하여 아테네로 물밀듯이 쳐들어갔으며, 페르시아군에 짓밟힌 성 안은 불바다

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테네의 제독 테미스토클레스는 함대를 이끌어 페르시아의 대함대를 살라미스

해협으로 유인한 뒤, 적의 함대를 포위하고 일제히 공격했습니다.

 

좁은 해협에 갇히고 폭풍까지 불어 페르시아 함대는 갈팡질팡하며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살라미스해전

에서 아테네군은 대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당황한 크세르크세스왕은 페르시아로 도망쳤습니다. 결국

페르시아 전쟁은 그리스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스의 폴리스 가운데 가장 강한 국가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였습니다. 그런데 스파르타는 아테네와는

달리 군국주의를 폈습니다. 스파르타 국민은 정복민인 시민과 정복당해 노예가 된 헬로트, 페리오이코

이 등 반자유민 계급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모든 시민들은 정해진 법률에 따라 똑같이 교육을 받았으

며 이것을 '스파르타 교육'이라고 합니다.

 

 

스파르타에서는 남자 아기가 태어나면 신체 검사를 하여 튼튼한 아기만 기르고 약한 아기는 버렸다고

합니다. 아이는 7세 때부터 공동 생활을 하며, 무술.경기 등 엄격한 교육을 받고, 20세에는 병사가 되었

습니다. 이렇게 군국주의를 편 스파르타는 그리스의 폴리스 가운데 아테네와 더불어 가장 강한 국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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