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지식

임오군란 갑신정변 간략 설명

꼬두암 2017. 9. 2.

조선 말기에 일어난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은 모두 민씨 정권 때문에 일어나게

되었는데요, 임오군란 갑신정변은 어떤 사건인지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임오군란은 고종 19년 1882년 6월 9일 일어났는데, 민씨 정권이 신식 군대를

우대하고 구식 군대를 차별하자 불만을 품은 구식 군대가 일으켰으며, 갑신

정변은 고종 21년 1884년 12월 4일 일어났는데, 김옥균, 박영호, 홍용식 등이

민씨 세력과 수구 세력을 몰아내고 개화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일으켰습니다.

 

 

<임오군란>

일본의 강압으로 맺어진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이후 조선 정부

에서는 무엇보다 강한 군사력이 시급하다고 생각하여 국방을 근대화시키기

위해 별기군이라는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별기군 군사들은 최신 무기를 갖추고

일본 교관에게 훈련을 받았습니다.

 

 

제복도 서양식이고 급료도 구식 군대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이런 차별 대우에

불만을 품은 구식 군대가 대규모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 바로 임오군란입니다.

흥선대원군의 주변 세력이 고종의 이복형인 이재선을 왕으로 세우기 위한 국왕

폐립 운동을 벌였으나, 이 역모는 탄로가 나서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개화파와 수구파의 다툼은 더욱 심해졌고, 구식 군대의 차별이 더 심화

되자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났습니다.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쥐고 있던 10년

동안은 국가의 재산이 비교적 착실히 쌓였으나 민씨 세력이 정권을 잡은 후

부터는 국고가 바닥이 나서 봉급이 관리는 6개월, 구식 군인들은 13개월이나

밀렸습니다.

 

이에 불만을 품은 구식 군인들은 결국 임오군란을 일으켰으며, 흥선대원군이

궁궐로 들어와서 정권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청나라는 임오군란의 책임을

흥선대원군에게 물으면서 청나라로 납치해 갔으며, 결국은 고종이 정권을

되찾았습니다.

 

 

<갑신정변>

1884년 12월 4일(음력10월17일) 개화당의 박영효, 김옥균, 홍영식, 서광범

등은 청나라를 등에 업은 수구 세력과 민씨 세력을 몰아내고 개화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갑신정변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은 우정국 개국 축하연을

계기로 정변을 일으켜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민씨 세력들을 처형하거나

쫓아내고 권력을 잡는데 성공하였으나 불과 3일만에 진압되어 정변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당시 조정은 민영익, 민승호 등의 민씨 세력과 김홍집, 김만식, 어윤중 등의

수구파가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 등의 개혁파들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본받아 개혁을 단행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민씨 세력과 수구 세력을 꺾고 새 정치를 펼치려던 이 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나게 된 이유는 청나라가 군사를 동원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김옥균 등은

쫓겨서 숨거나 일본으로 망명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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