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지팡이 유래 그리고 대중목욕탕의 발전

꼬두암 2016. 3. 29.

연세든 어르신의 상징인 지팡이가 옛날에는 권위의 상징이었다는데, 지팡이 유래 믿어도 될까요? 또 기원전

2만 년 경부터 사우나 문화를 즐겼다는데, 대중목욕탕의 발전 역시 상당히 궁금합니다. 과연 믿어도 되는지

지금부터 지팡이 유래와 대중목욕탕의 발전 과정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지팡이의 유래>

지금은 어르신들의 보행 보조기구나 등산 보조기구로 사용하지만 지팡이는 예로부터 서양에서 권위의 상징

으로 남성적 힘, 권위, 위엄, 마력, 여행, 순례 등을 상징했는데, 손잡이가 구부러진 지팡이는 '선한 목자'의

상징으로, 고리가 달린 지팡이는 주교의 권력을 나타냈습니다. 

 

 

지팡이는 '신의 뜻'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주로 성직자들이 그 직무의 위엄을 보여주는 용도로 쓰었지만, 17

세기 말엽에는 귀족의 권위를 나타내는 장식물로도 유행했답니다.

 

17세기 말엽, 유럽의 귀족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초상화를 간직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나갔는데,

때 초상화는 얼굴만 그린 것이 아니라 신체 전체를 그린 것이었는데, 대부분 오른손에 지팡이를 쥐고

측면으로 선 모습이었습니다. 거기에다 위엄있는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남자들도 여자처럼 긴 머리를 하는

것이 당시의 또 다른 유행이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특히 뱀이 휘감긴 문양의 지팡이는 권위와 함께 '치료'의 지혜를 상징했다고 합니다. 유럽에서는 뱀 문양을

약국이나 보석점 등의 간판 표지로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뱀을 의약신 또는

수호신으로 숭배하였던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처럼 지팡이를 짚고 선 모습의 초상화를 그리는 유행은 18

세기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대중목욕탕의 발전>

기원전 2만 년 경, 사람들은 뜨겁게 달군 돌에 물을 꺼얹어 그곳에 몸을 기대는 지금의 사우나 같은 문화를

즐겼다고 합니다. 목욕은 몸을 깨끗이 하는 것 외에 건강 증진에도 도움이 된다고 이미 깨닭았던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남자들은 체력단련장에서 운동을 한 후 사우나를 즐겼고, 여자들은 가벼운 질병치료나 피부

미용을 위해 사우나를 즐겼답니다. 그래서 1천6백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대중목욕탕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세시대에 들어와서 목욕탕은 흔적을 감추었습니다. 기독교 문화의 영향으로 몸을 다 드러내 놓고

씻는 행위를 죄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목욕이 다시 유행한 것은 17세기에 들어서였습니다. 그 무렵 유럽에

서는 온천이 유행해 소문난 온천으로 며칠씩 여행을 가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온천 목욕의 유행은 특정 계층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에 서민들은 목욕 한 번 제대로 할 수

없었답니다. 영국은 1860년대까지도 가정집에 목욕탕이 설치된 경우는 아주 드물었습니다. 1837년 빅토리

아 여왕이 즉위했을 때도 버킹검 궁에는 목욕탕이 없어서 급하게 목욕탕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우나 문화로 유명한 일본에 대중목욕탕이 유행한 것은 메이지 시대의 일입니다. 1867년 왕위에 오른 메

이지가 서구식 복장과 요리를 즐기면서 일본에도 서구화 바람이 불었는데, 이때 생긴 대중목욕탕은 수도

에도에만 6백 군데였다고 하니 그 유행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동.서양과 각 계층을 막론하고 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한 대중목욕탕이 널리

유행하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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