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지식

강화도조약 배경과 불평등 이유 그리고 조약 내용

꼬두암 2015. 11. 21.

일본의 강압으로 맺어진 조약인 강화도조약 배경과 불평등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강화도조약의

공식명칭은 '조.일수호조약'이며, 병자수호조약이라고도 합니다. 1868년, 일본군이 군함을 끌고와 부산항

에서 함포를 쏘아 대며 조선을 압박하더니, 급기야 강화도에서 운요호 사건을 일으켜 결국 1876년 2월 3일

(음력) 강화도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강화도조약 배경은 아래와 같습니다.

1873년 20세를 넘긴 고종이 직접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자 흥선대원군과 함께 쇄국 정책은 물러나 버렸고

정권은 왕비 민씨 일파가 쥐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이 물러남으로써 외국에 대해 개방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자 일본은 1875년 2월부터 군함을

이끌고 동해.남해.서해에서 무력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 뒤, 일본은 강화도에 침입했고 조선군이 발포를

하였습니다. 일본군은 대대적인 공격으로 영종도에 상륙했으며 조선군과 싸워 승리했습니다.

 

 

영종도를 한동안 점거하던 일본군은 결국 물러났으나 계속 바다에 함대를 띄워 놓고 무력 시위를 벌이다가

마침내 운요호 사건을 일으키고 이듬해 강제로 강화도조약을 맺었습니다.

 

운요호 사건이란 1875년 9월 20일 조선 해안을 탐측 연구하기 위해 왔다고 핑계대고 강화도 앞바다에 불법

으로 침투하여, 조선 수군의 방어적 공격을 받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함포 공격을 가하고 영종진에 상륙해

조선 수군을 공격하여 피해를 입히고 퇴각한 사건입니다.

 

 

강화도조약이 불평등한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강화도조약 불평등 이유는 우선 일본의 무력 시위 아래 강압적으로 맺어진 조약이라는 것입니다. 강화도

조액은 모두 12개의 조항으로 되어있습니다.

 

그 중에는 개항한 지역 중에 일정한 구역을 정해 그 곳에서 일본 상인들이 자유롭게 무역할 수 있게 하는

내용과 조선 땅에서 일본인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조선에 파견된 일본 외교관이 재판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데, 이것은 일본에 유리한 불평등한 조약인 것입니다.

 

또 조약의 내용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청나라를 무시하고 조선을 침략하려는 야욕과 인천, 부산, 원산의

개항을 통해 정치.군사.경제적인 거점을 마련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조선은 개항의 적절한 시기를 놓치고 일본에 의해 수동적으로 불평등 조약을 맺으면서 개항하는

바람에 열강의 침략을 받고 식민지화하는 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강화도 조약 내용 중 주요한 부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 제2관, 일본 정부는 사신을 수시로 조선에 파견한다.

- 제4관, 부산항 외에 2개의 항구를 개방하여 통상을 허용한다.

- 제5관, 일본인의 치외 법권을 인정한다.

- 제6관, 조선에서 일본 화폐를 통용시키고 관세를 없앤다.

- 제7관, 일본의 조선 해양 측량을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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