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지식

무학대사와 이성계

꼬두암 2015. 11. 15.

역사적으로 보아도 무학대사와 이성계는 언제 처음으로 만났는지 정확한 기록을 찾을 수가 없지만, 무학

대사(1327~1405)는 이성계를 장수에서 왕이 되도록 이끌어 준 인물로서 신비로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1327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무학의 본래 성은 박씨입니다.

 

무학대사의 부모는 갈대로 삿갓을 만들어 팔던 친한 백성이었고, 18세 때 수선사(송광사)로 들어가 불도를

닦기 시작했으며 용문산의 혜명 스님에게서 불법을 배웠고, 법명은 자초입니다.

 

무학은 원나라로 유학하여 인도 출신의 고승인 지공 스님에게서 선불교를 배웠습니다. 귀국한 무학은 나옹

스님을 찾았으며, 공민왕의 왕사(임금의 스승)인 나옹 스님은 무학을 제자로 삼았으나, 다른 제자들은 무학

이 천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싫어했습니다.

 

 

 

쫓겨나다시피 한 무학은 토굴 속에서 오랫동안 도를 닦으며 생활하였으며, 전국을 떠돌며 수행하던 중에

이성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무학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이성계를 만난 뒤부터였습니다.

 

이성계가 한창 장수로 이름을 떨치던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거참, 이상하다!" 이성계는 꿈에서 어느

초가집에 들어가 쉬었다. 그 때 별안간 집에 불이 붙어 소스라쳐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런데 등에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지고 있었다.

 

이성계는 근처에 도통한 스님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꿈풀이를 청했습니다. 그 때 꿈풀이를 한 스님이

바로 무학대사였던 것입니다.

 

"장차 임금이 되실 길몽입니다!"

 

 

등에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진 모양이 한자로 임금 왕(王)자요, 불에 타서 허물어진 집은 고려 왕조라는 것이

었습니다. 그 뒤부터 이성계는 무학대사를 스승으로 삼았으며, 조선 건국 후에는 왕사로 모셨습니다.

 

무학대사는 조선 건국의 큰 공신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욕심도 내지 않았습니다. 이성계에게 남몰래 왕의

꿈을 심어 주고 또 실현시킨 인물이었을 뿐, 아무런 욕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무학대사는 천문 지리와 음양 도참설에도 밝았는데요, 조선이 새로 건국되고 정도전과 함께 민심을 수습하

기 위해 도읍을 옮겨야 한다고 건의하였고, 한양(지금의 서울)이 새 도읍지로 알맞다고 조언하여, 조선의

수도가 한양이 되도록 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안정시키도록 도와 준 무학대사는 왕사직에서 물러나 도를 닦다가 79세의 나이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반응형

댓글